세상 제대로 보기

당신의 사업장에 어용노조가 준비되고 있다.

해적70 2012. 4. 5. 11:32

용노조와 민주노조의 대응

-금속사업장을 중심으로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2010년부터 현재까지 노조법 개정 이후 사측의 민주노조 탄압과 어용노조 설립이 봇물 터지듯 전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2010년 초 창원과 경주에서 시작된 어용노조 설립 분위기는 대구와 구미를 거쳐 최근에는 충청도 사업장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본 보고서는 금속노조 사업장 중 어용노조가 설립된 발레오만도, 상신브레이크, KEC, 유성기업, 보쉬 전장 등의 사례를 통해 사측이 어용노조 설립을 준비할 때 나타나는 조짐들, 직장폐쇄에서 어용노조 설립까지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쟁점들, 민주노조 진영 대응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극복방향을 제시한다.

 

 

1. 어용노조 준비 시기 나타나는 몇 가지 조짐들

 

1) 재무, 생산, 노무 책임자의 변경 또는 외부 영입.

어용노조 설립과 그에 따른 마찰은 사측으로서도 일시적인 손해를 감당하는 것이다. 자본가는 경영진 또는 고위 관리자에게 기존 노무관리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이 손해를 정당화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새로운 담당자는 기존 노사관계에 대해 전면적 혁신을 책임진다.

 

발레오만도는 `09년 인지콘트롤스 출신의 노무관리 및 구조조정 전문 인사였던 자를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09년 하순부터 신임 대표이사는 개인 노무사를 고용하는가 하면 노무관리 담당들을 고무시켜 기존과 달리 노조를 자극하는 행동들을 계속하게 했다. 이러한 활동들 속에 자신감을 회복한 관리직들이 이후 직장폐쇄와 금속노조 탈퇴 공작을 주도한다.

 

KEC는 `09년 재무팀장으로 회장의 오른팔을 임명한다. 이 자는 `09년부터 외주화 계획을 생산관리의 최우선 과제로 두고, 외주화의 최대 걸림돌인 KEC지회를 제거하기로 마음먹는다. `09년 중하순부터 모든 생산과 노무관리 핵심 결정 사항이 이 자를 통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이 되지 않아 직장폐쇄와 복수노조 설립이 진행된다.

보쉬전장 역시 비슷하다. `11년 중순에 현대차가 독자적인 차량용 전자 부품 회사 설립을 계획하면서 보쉬는 케피코를 통해 생산하던 전장부품에 대한 재조정이 필요해 졌다. 모든 기업들이 그러하듯이 자본이 생산 재배치와 관련해서 첫 번째 생각하는 것은 외주화 확대다. 그리고 이렇게 하려면 보쉬전장 지회가 가장 걸림돌이다. 보쉬전장은 `11년 말 노무이사를 새로 선임하고, 공장장을 교체한다. 그리고 3개월 후 복수노조가 설립된다.

 

2) 사측의 조합원을 상대로 공세적 선전전

98년 정리해고나 부도 후 인수합병을 거친 기업의 노동자는 트라우마처럼 항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사측은 이를 집요하리만치 이용한다. 회사가 직접 경영소식지를 내기도 하고, 관리자들을 통해 각종 소문을 유포하기도 한다. 물론 자본은 진짜 위기가 있을 때는 오히려 위기를 덮는다. 진짜 심각한 위기가 있는데 이를 떠들고 다니는 것은 회사 문 닫겠다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이 경우 당장 은행들부터 차입금 회수에 나설 것이다. 대부분 회사가 나서서 경영위기를 목소리 높여 이야기할 때는 100% 조합원을 압박하기 위한 심리전이다.

 

발레오만도는 대표이사 변경 이후 `09년 하반기부터 ?여로분의 대표사원입니다?라는 제목의 경영 이슈 소식지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회사가 위험하고 공장이 매각될 수 있다는 ‘98년 떠올리기(만도그룹 부도)‘였다. 대표이사는 다음에 카페를 개설해 경영위기, 고용불안 가능성을 유포하고 조합원들을 상대로 경고성 글들을 계속 올렸다. 직장폐쇄 기간에는 아예 본사 생산담당 대표이사 명의의 공장 철수 공고문까지 내는 대담한 선전전도 진행했다. `09년 발레오전장의 공장 철수가 있었고, 본사의 경영위기가 심각했던 것은 사실이나, 매년 3천억 이상의 매출과 국내시장 7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던 발레오만도가 공장을 어떻게 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이야기다. 협박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공조와 달리 전장 쪽은 한국에 대체 생산지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봐도 2010년 발레오는 공장 철수는커녕 역대 최대 매출을 올린다.

 

두산인프라코어는 `09년 일시적 물량감소를 계기로 조합원들에게 연월차 300만원을 반납해야 회사가 산다는 식의 경영위기설을 유포했고, 결국 임금교섭에서 이를 관철시켰다. 이후 2009년 말 금속노조 지역지부 편제를 빌미삼아 두산DST지회, 창원지회(공작기계) 집행부를 포섭, 2010년 초에 금속노조를 탈퇴시켰고, 이후 사보 ?열린창?을 통해 1년 내내 노동조합을 맹비난하는 공격적 선전전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사보의 핵심 내용은 주로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을 이간질시키는 내용으로 예전과 같이 노조 쪽 주장을 반박하거나, 임단협 시기 회사 쪽 입장을 이야기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가운데 사측 선전 내용을 그대로 받은 후보가 집행부 선거에 나와 낙선 이후 `11년 하반기에 어용노조를 설립한다.

 

상신브레이크는 `10년 3월 갑작스레 전사원 의무교육을 실시했다. 안전교육을 제외하고 처음인 전사원 교육은 PSI컨설팅이라는 회사에서 주관했는데, 이 회사는 복수노조 노무관리부터, 현장 경영 합리성, 성과 중심 보상체계 등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다. 4월부터는 사측 노무관리자들이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술을 마시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런 일이 연달아 발생한 지 3개월 후에 사측은 6월 직장폐쇄와 어용노조 출범을 강행했다.

 

유성기업은 2010년 말부터 회사경영악화에 대해 관리직들이 조직적으로 현장에 유언비어를 유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1년 초 사무직 전원에tp 사직서를 받으면서 경영위기가 심각한 것처럼 현장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후 임단협 시기에는 조합원과 노조를 분리시키기 위한 선동도 이루어졌다.

 

보쉬전장은 연초부터 사보 ?RBKB 경영소식?를 적극적으로 배포하며 고용불안 조장과 노보에 대한 반박을 공격적으로 진행했다. 내용은 앞의 사보들과 비슷한 내용으로 경영 위기롤 이야기하거나,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과 이간질시키는 것들이었다. 이후 사측은 노조간부를 징계하면서 동시에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조합원 사이에 유포하고, 관리자들은 심지어 집단행동 시 직장폐쇄를 계획하고 있다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이야기했다.

 

3) 기존 노사 관행에 대한 무시와 도발

대부분의 어용노조 설립 사업장에서 사측이 어용노조 설립 준비를 맞췄다는 신호는 기존 노사 관행을 문제 삼는 것이었다. 교섭해태가 진행되고, 사소한 근태관리부터, 특근거부문제, 연말 유급휴가 문제, 타임오프 문제 등을 가지고 조합 간부들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복수노조에 익숙하지 못한 노조 간부들은 사측의 이상한 태도를 대단하지 않게 넘기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뒤편에서는 어용노조가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경우가 다수다. 어용노조 설립 이전에 노조를 간보는 절차인 셈이다.

 

발레오만도 사측의 예전과 다른 행동은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12월 31일 유급휴무 건에 시비를 걸면서 시작됐다. 지회가 예전 관행처럼 오전 4시간을, 총회시간 3시간 교육시간 1시간으로 사용하고, 오후 4시간은 유급 처리하자는 안을 제시했지만 사측은 오후 2시간은 무급처리해야 한다고 우겼다. 그리고 이후부터 노사협의를 해태하고, 식당 인원 축소를 들고 나오는 등 노동조합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장폐쇄 몇 일 전부터는 기초질서 지키기, 규정준수를 요구하며, 위반자를 징계위에 회부했다.

 

상신브레이크는 4월 말, 유례가 없었던 근태문제를 빌미로 조합원 권고사직을 강요했다. 또한 연초부터 단협 합의 사항인 공장 신설 및 외주화를 노조 몰래 추진했고, 이것이 7월 말 밝혀지자 노사 교섭을 파행으로 몰고 갔다. 지회가 이 문제를 핵심 쟁점으로 제기하자 사측은 함께 진행되던 특단협, 임단협, 현안문제 분리를 주장하며 교섭을 거부했고, 노사 합의 없이 8월 12일 공장 부지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8월 18일, 대표이사 명의로 협박성 대자보를 붙인 이후 8월 23일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유성기업은 3월 말 공장장이 노조 게시물을 훼손하는 것으로 도발을 시작했다. 민주노조 건설 이후 한 번도 없었던 행동이었다. 노조가 공식 사과를 받아내기는 했지만 이후 사측은 조합원 총회, 교섭보고대회, 과별 토론, 조합원 설명회 시간에 관리직을 생산 현장에 투입하며 노동조합을 계속 자극했다. 지금까지 불가피하게 관리사무직을 현장에 투입할 때는 노조의 협조를 구하거나, 사후 사과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으나 직장폐쇄를 앞둔 3월부터 5월까지는 이런 행동도 없었다. 특히 직장 폐쇄 한 달 전부터는 관리직의 현장투입이 극에 달해, 공장장까지 현장에 내려와 조합원을 자극하고, 현장 상황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보쉬전장은 발레오전장에서 사용되었던 연말 근태처리를 가지고 도발을 시작했다.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연말 근태를 갑자기 무급처리하더니, 이에 대해 항의하는 지회장과 사무장을 징계위에 회부했다. 작년 말부터 전임자 임금 지급을 미루며 간부들을 압박하고, 노사협의를 파행으로 이끌어 현안 처리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2월 말 지회장 해고, 사무장 정직을 통보하고, 지회임원들에 대해 손배 가압류까지 감행했다.

 

 

 

2. 직장폐쇄에서 어용노조 설립까지.

 

1) 직장폐쇄의 시작과 공장 가동

지금까지 대부분의 직장폐쇄는 노조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된 시점이나, 사측의 비밀 계획이 폭로되고 교섭이 경색된 국면이나, 휴가 전후, 또는 아예 D-Day를 미리 정해놓고 사측 교섭대표가 출정을 핑계로 교섭 참여를 하지 않는 시점에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직장폐쇄와 동시에 사측은 관리직 사무직을과 미리 포섭해 놓은 일부 조합원들을 투입해 공장을 가동했다. 많게는 초반부터 80% 내외의 가동률을 확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현장 복귀를 선언하지만 사측은 집단복귀를 막았고, 사측의 협박에 개별 복귀자가 늘어나며 노조의 현장 장악력은 빠른 속도를 하락했다.

 

발레오만도는 노사협의가 진행되던 와중에 기습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한 경우다. 식당 비정규직 고용, 경비직 전환배치, 조합원에 대한 계속되는 징계, 물류 부분 외주화 등 현안 문제에 대해 사측이 노사협의 결정 없이 일방적으로 시행 하고 있었고, 지회는 이에 대해 완성차 라인 특근거부, 준법(?) 투쟁 등을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2월 11일 노사협의가 진행되었고, 설 연휴 직후인 2월 16일 직장폐쇄가 이뤄졌다.

직장폐쇄 이후 사측이 가동률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가 승패의 핵심인데, 발레오만도 사측은 조합원 규모의 30%에 달하는 200여명의 관리직 사무직과 사전에 포섭한 조합원들을 노조 간부들 모르게 공장안으로 진입시켜 생산을 개시했다. 그리고 이후 가정통신문과 관리직들의 개인 연락망을 통해 조합원들의 복귀를 지속적으로 선동했다. 지회는 공장 외곽에서 승용공장으로 통하는 두 문과 상용공장으로 향하는 문 앞에 천막을 설치했지만 사측은 생산 인원을 공장 안에 상주시키며 생산을 계속했고, 결국 지회는 2월 23일 현장 진입을 위해 현장 복귀 선언을 하게 된다.

 

KEC는 지회의 징검다리 파업과 일주일간의 전면 파업 뒤 2010년 6월 30일 기숙사에 용역깡패를 투입하며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200여명의 관리사무직이 투입되었지만 사측 의도만큼 생산이 정상화되지는 못했고, 사측은 7월 1일 신규채용공고를 냈다. 사측은 직장폐쇄 이후 7월 15일을 복귀 기한으로 하여 조합원과 가족들에게 가정통신문, 문자 등을 내보냈다. 7월 초 약 70여명이 신규채용되었고, 2차로 조합원들에게 휴가 직후인 8월 9일까지 업무복귀를 종용했다. KEC는 7월 중하순부터 개별 복귀자가 늘어 8월부터는 가동률을 상당히 회복했다.

 

상신브레이크는 노조 몰래 추진하던 공장 신설 및 외주화 계획이 교섭 쟁점이 된 한 달 후에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지회는 6월 말부터 잔업 특근을 거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발레오만도가 노골적으로 노사교섭을 파행으로 몰아간데 반해 상신브레이크는 직장 폐쇄 2개월 전인 6월 8일 현안문제에 대해 노사실무협의 합의를 끝냈고, 7월 28일 18차 교섭까지 임단협에 대해 일정하게 의견접근을 이룬 상태였다. 직장폐쇄 이후 사무직과 영업소 직원들을 동원해 생산을 재개했으며, 지회는 곧바로 현장복귀를 선언했다. 9월 중순 사측의 공격적 태도에 조합원 200여명이 현장 복귀했으며, 노동자들을 감금 상태로 공장에 묶어두며 예전 생산량을 곧바로 회복했다.

 

유성기업은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 건으로 노사가 협의를 진행하던 중 2011년 5월 17~18일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된 이후 오전조 퇴근 후 기습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야간조가 퇴근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측이 고용한 용역들이 공장 정문에 배치되어 조합원들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야간조 조합원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공장점거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용역 차량이 조합원에게 돌진하여 13명이 중상을 입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공장 점거 6일째인 5월 24일 공권력 침탈이 이뤄져 농성자 전원이 연행되었다. 점거 농성 해제 이후 사측은 바로 관리직 사무직 80여명을 동원해 공장 가동을 시작했으며, 6월 초에는 관리 사무직 130여명, 복귀자 40여명으로 아산공장을 평시 대비 70%로 가동했다. 한편, 현대차와 유성기업이 연초부터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을 막고,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는 문건이 여러 차례 폭로되었다.

 

2) 직장폐쇄 이후 투쟁과 어용노조 설립

직장폐쇄 이후 노조 대응은 매우 수세적이 된다. 그리고 수세적이 될수록 개별 복귀 조합원은 늘어난다. 개별복귀조합원에 대해 사측은 현장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저항 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는다. 그리고 노조 핵심 간부에 대한 징계와 공장출입제한으로 노조와 조합원을 분리시키고, 금속탈퇴 총회를 실시하던지, 복수노조를 설립한다.

 

발레오만도는 지회의 현장복귀 선언에도 불구하고 집단적으로 출근하는 조합원들을 막았다. 한편, 2월 25일 경주지부 지역 공동 총회, 3월 8일 지역 총파업이 사측의 교란 전술과 지회의 전면전에 대한 부담감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3월 4일 경주 물류의 핵심인 7번 국도 점거 시위 과정에서 30여명이 경찰에 연행되었으며, 3월 18일에는 경찰 조사를 받던 지회장이 구속되었다. 3월 초부터 “회사가 이미 청산절차에 들어갔다, 앞에 나서지 않으면 선처하겠다.”는 유언비어가 광범위하게 유포되었고, 직장폐쇄 한 달 내에 100여명이, 두 달 내에 조합원 절반 이상이 개별 복귀했다. 복귀 조합원들은 사측의 성향 분류에 의해 나뉘어져 근기법도 완전 무시된 상태에서 일을 했다. 조합원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기 위해 각종 교육과 자아비판 시간이 계속되었고, 4일 넘게 공장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12시간 맞교대로 노동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확실하게 승기를 잡았다는 판단이 서자 사측은 직장폐쇄 두 달 째부터 어용노조 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사측 전위대를 자처한 조조모(조합원을 위한 조합원 모임)가 4월 말 구성되어 공장 안에서 관리자를 대신하여 조합원들을 통제하기 시작하더니 5월 19일에는 복귀 조합원들을 모아 조직형태 변경 총회를 개최했고, 금속노조 탈퇴와 어용노조 설립을 단행했다. 25일에는 법원에 의해 직장폐쇄가 불법이라는 판결이 나왔고, 다음날 사측은 직장폐쇄를 해지했지만 미복귀 조합원 100여명에 대해서는 자택 대기 명령을 내리며 사실상 공장 출입을 봉쇄했다.

 

상신브레이크는 직장폐쇄 직후 현장복귀를 선언했다. 물론 사측은 이에 대해 개별 복귀만 허용하겠다는 입장이었고, 관리직과 사무직을 동원해 공장을 가동했다. 현장복귀 선언 이후 상신브레이크지회 조직력은 급격스럽게 하락했고, 10여일 만에 조합원 과반수 이상이 현장에 개별 복귀한다. 사측은 직장폐쇄 초기(8월 26일)에는 공장신설 및 외주화 문제에 대한 교섭 불가, 지회임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 수용을 요구하다, 이후 9월 13일에는 요구를 보다 높여 임단협 일임, 타임오프 수용, 이후 집단행동 포기, 항구적인 노사평화 선언 등을 요구했다. 그리고 지회 임원 30여명을 제외한 상태에서 10월 말에는 사측 주도하에 임원 선거가 치러지고 금속노조 탈퇴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당선되었다.

 

KEC는 직장폐쇄 이후 지회가 전임자 관련 교섭 의제를 철회하고 임금 관련 교섭만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를 거부했고, 경북 지노위가 7월 5일 지회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이후 경찰이 구미지부와 KEC지회를 압수수색 했다. 사측은 이후 고용안정, 전환배치 등에 관련된 단협 사항 개정을 요구했으며, 교섭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지회 와해가 목적임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했다. 직장폐쇄 이후 일부 관리직과 복귀조합원을 12시간 맞교대(기존 3교대제)로 운영하며 생산을 기존 50~70%로 유지했으며, 8월을 거치며 절반 가까운 조합원들이 개별 복귀한 가운데, 9월 말까지 대치가 이어지다 10월 21일 조합원 200여명이 공장점거에 돌입했다. 이런 가운데 10월 30일 경찰이 교섭 중인 구미 지부장을 연행하려고 시도해 지부장이 분신 항거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고용노동부 대구지청장이 사측 대표의 교섭 재개를 확인한 가운데 11월 2일 점거 농성이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사측은 형식적으로만 교섭에 나서며 뒤에서는 300억원 가량의 손배소와 28명에 대한 징계해고를 단행했다. 2011년 5월 25일 지회는 파업 342일만에 파업철회와 업무복귀를 선언했으며, 사측은 6월 13일 직장폐쇄를 해제해 조합원 168명이의 현장으로 복귀했다.

 

KEC 사측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시행된 7월 1일에 바로 어용노조를 설립했다. 9월에 국정감사에서 사측의 금속노조 와해와 어용노조 설립 공작 계획이 폭로되었으나 KEC는 연초 계획에 따라 11월 14일 229명에 대한 인원정리 방침을 밝혔고, 희망퇴직자를 제외한 166명에 대해 `12년 1월 13일 정리해고 통보를 단행했다. 한편 어용노조는 2월 초 상여금 300% 삭감, 3조3교대에서 2조2교대로 전환, 교대수당 폐지, 3년간 사측 요구시 무급순환휴직 실시 등을 합의하며, 사측의 구조조정 계획(일부 공정의 완전 외주화)을 승인해 준다. 어용노조의 합의 이후 사측은 정리해고 규모를 조정하여 금속노조 지회 조합원 75명만을 대상으로 2월 24일자로 정리해고 통지를 했다.

 

유성기업은 지회가 점거 농성 이후 2011년 6월 13일 현장복귀를 선언했으나, 사측은 개별 복귀만을 허용하겠다며 조합원 공장 출입을 제한했고, 7월 중순부터는 복귀자 250여명과 관리자들을 이용해 아산과 영동 공장을 평시 대비 80% 선에서 가동했다. 지회가 공장 밖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에서 교섭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사측은 7월 초부터 어용노조를 본격적으로 준비해 7월 15일 2노조 설립신고를 마쳤다. 사측은 발레오만도나 상신브레이크에서와 비슷하게 개별 복귀 조합원들에게 지회 파업이 불법이고 앞으로 회사 규정에 따르겠다는 각서를 받는가하면, 용역깡패 수 백명을 공장에 상주시키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지회의 농성 기간 개별복귀 조합원과 관리자들을 수용소 노동시켰고 이런 가운데 다수의 산재 사고도 발생했다.

 

8월 초 복귀 조합원이 과반수를 넘어선 가운데 지회는 장외 농성(239명)을 해제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했다. 8월 16일 법원이 중재한 내용(사측에 대한 서약서 제출, 8.31까지 전원복귀, 복귀시점 기준 급여보전 등)을 받아들여 19일부터 단계적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사측은 발레오만도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조합원들을 여러 등급으로 나눠 관리하기 시작했고, ‘조직활성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조합원 자존감 죽이기 작업에 돌입했다. 유성기업지회는 현장복귀 이후 현장에서 최대한 투쟁한다는 기조를 가지고, 교육 불참, 전환배치 거부 등을 이어갔으며, 현장 투쟁을 통해 조직력 와해를 막았다. 사측은 9월부터 징계위를 계속 개최해 5차례에 걸쳐 조합원 545명을 징계했다.(해고 27명, 출근정지 42명, 정직 17명, 견책 77명 등). 지회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맞서 결국 올해 2월 21일 충남지노위에서 1차 징계자 대부분에 대해 부당 징계 판정을 이끌어냈다. 한편, 최근 사측은 어용노조에 관리직까지 조합원으로 가입시켜 어용노조를 과반노조로 만들었다.

 

 

 

3. 민주노조 대응의 문제점과 극복과제

 

사측의 행동

노조 행동

노조의 법률대응

임원진의 교체

노무, 생산 관련 임원 교체

현장

불안조성

경영위기 선전,

노노갈등유발, 집단교육

노보 대응, 노사협의

경영위기 인정

도발

관행적 유급휴일 무시

조합원에 대한 징계 남발

전임자임금지급중단

노조홍보물 훼손

노조행사 시 관리직 현장 투입

공개 경고

노사협의

현장 대응

간부 농성

부당징계/해고 구제신청

교섭파행

법 위반 이유로 의제 회피

원청과의 납품 방법 협의

경영권 침해 이유로 의제 회피

반복적 교섭 연기

교섭 책임자의 출장

태업 투쟁

부분파업,

전면파업 경고

간부 농성

직장폐쇄

연휴·휴가 전후 공고,

쟁의행위 찬반투표 직후 공고

용역 깡패 투입

공장점거

현장복귀선언

지역연대투쟁,

천막 농성

노조사무실출입가처분신청

용역깡패 고소

직장폐쇄효력정지가처분

생산재개

관리자 사무직 생산 투입

사전 조직된 조합원 생산 투입

개별 복귀 종용

공장에서 숙박하며 생산

공장 봉쇄,

금속 집중집회

사회적 중재

파업 철회

직장폐쇄기간중 임금청구소송

어용노조

설립

간부 징계, 금속탈퇴강요

복귀조합원 집단 교육

어용노조 설립과 개별교섭

핵심간부 현장 복귀 저지

현장노동강도 강화

공장 외부 농성

조합원설득

어용노조비판

산재 대응

부당징계/해고 구제신청

특별근로감독신청

금속탈퇴무효소송

단체교섭응낙가처분신청

근로자지위보전,임금가지급소송

부당노동행위금지가처분신청

과반노조

획득

취업규칙 개정

어용노조와 단협개악

각종현장투쟁

선전작업

과반노조 이의 신청

교섭단위 분리 신청

 

1) 문제점

○ 여론전 단계

노조 대응의 문제점은 사측 여론전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측이 사보, 관리직 등을 통해 고용불안과 관련한 소문을 유포해도 노보에 관련 대응을 몇 줄 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사측 경영위기 설을 인정하는 선전물을 내기도 한다. 사측의 선동에 비해 노조의 대응은 선전 물량과 질 모두에서 매우 뒤져 있었다.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와 부도/매각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사측의 이러한 선동에 쉽게 불안한 상태로 내몰린다. 이 경우 사실상 조합원들의 ‘마음’을 사측에 내어주고 노조탄압 대응 싸움을 시작하는 꼴이 된다.

 

○ 도발 단계

직장폐쇄 이전 노조 대응의 두 번째 문제점은 사측은 전혀 관행적 노사협의, 노사교섭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데 노동조합은 직장폐쇄나 어용노조 설립 전까지 기존 교섭틀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측은 노사협의에서 노조 요구를 들어주는 척 하지만 속내는 노사협의를 시간 끌기 정도로 생각했다. 심지어 임단협 교섭에서도 대부분의 요구를 수용하는 척 하다가 막판에 모든 합의를 뒤집고 순식간에 직장폐쇄로 돌입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미 사측이 이러한 마음을 먹었을 때는 노사협의에서의 경고, 관성적인 태업, 부분파업 등은 사측에 위협이 되지 못한다. 결국 사측이 노조 파괴를 준비할 때 노조는 관성적 노사협의, 임단협 교섭에 빠져 사실상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하게 된다.

한편 이 기간에 사측은 직장폐쇄 기간에 대비한 여러 대책을 준비한다. 원청 납품 기한을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한 1차 부품사들은 미리 재고를 높이는 방식으로 생산 조정을 했고, 아예 해외 공장에서 역수입하는 방안까지를 원청과 협의하기도 했다. 이런 사측 움직임에 대해 노조는 대부분 낌새를 파악하지 못한채 잔업 특근을 계속 이어갔다.

 

○ 직장폐쇄 단계

관성적인 교섭과 단체행동은 직장 폐쇄 상황에 부딪혔을 때 아주 큰 당혹감으로 돌아온다. 특히 직장폐쇄가 공장 가동 중단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노조의 교섭권이 실질적으로 무력화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사측은 관리직, 사무직, 파업 불참 조합원, 빠른 개별 복귀 조합원들을 투입해 직장폐쇄에도 불구하고 공장을 그럭저럭 가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직장폐쇄, 공장가동률 증가, 조합원 불안감 증폭, 복귀조합원 증가, 공장 가동률 증가, 파업 효과 감소, 조합원 불안 증가라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이 상황에서 현장복귀선언은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직장폐쇄 일주일 만에 현장복귀선언을 한 발레오만도, 하루 만에 복귀선언을 한 상신브레이크는 이후 집행부의 조합원 장악력이 급감했다. 그리고 한 달 내에 현장에는 어용노조 혹은 회사측 조합원들이 현장을 완전 장악했다. 유성기업지회는 직장폐쇄 한 달 후 현장복귀 선언을 했다. 복귀선언 직전까지 개별 복귀율이 조합원의 24%에 불과했고 공장가동률은 65% 내외(평시 80% 내외)였다. 하지만 직장폐쇄 기간이 늘어나며 복귀선언 한 달(직장폐쇄 이후 두 달) 후에는 개별복귀율이 50%, 두 달 후에는 60% (공장가동률은 평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단체교섭을 통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해진 이 기간에 노조는 주로 법률 대응과 사회적 중재에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유성기업지회는 법원에 직장폐쇄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제출해 법원 중재로 직장폐쇄 91일 만에 직장폐쇄를 종료시켰다. 발레오만도 역시 90일 이후 법원의 직장폐쇄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이 내려졌다. 하지만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기까지 3개월 가까이 걸렸고, 이 기간에 사측의 공세로 조합원들 상당수가 개별복귀 했기 때문에 직장폐쇄 종료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더군다나 사측이 조합원들을 단계적 복귀시키며 이들을 회유, 협박하기 때문에 더욱 현장 복귀 후 조합 유지가 어려웠다.

 

조합사무실에 대한 출입 가처분 신청은 사업장에 따라 걸리는 시간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법원에서 허가를 받아냈다. 하지만 사측은 위법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조합 출입은 용역을 통해 통제했으며, 일부 간부들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조합 출입을 허용했다. 또한 조합 사무실 외의 이동을 철저히 막아, 복귀 조합원과 간부들의 소통을 차단했다. 이 밖에도 용역 폭력에 대한 각종 고소고발이 진행되었지만, 대부분이 경미한 처분을 받는데 그쳤다.

 

○ 어용노조 설립과 이후

2011년 7월 이전에는 어용노조가 발레오만도나 상신브레이크처럼 불법적 총회를 개최해 금속탈퇴를 결정했었다. 이에 대해 지회는 법원에 조직형태변경 조합원 총회에 대한 무효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하기도 했지만 복수노조가 허용된 2011년 7월 이후 사측은 조직형태변경이 아니라 어용노조를 별도로 만들기 시작했다. 어용노조를 핑계로 교섭을 회피하는 사측에 대해 KEC지회는 단체교섭응낙가처분 신청(7월 1일 이전 교섭 중 근거)을 통해 단체교섭권을 복구하기도 했지만 사측의 민주노조에 대한 교섭해태와 복수노조와의 개별 교섭으로 단협개악을 막지는 못했다. 유성기업은 직장폐쇄 기간 중 어용노조를 만들어 개별교섭을 진행했고, 올해 2월 관리직까지 대거 노조에 가입시켜 어용노조를 과반수 노조로 만들었다. 지회는 이에 대해 과반수노조 이의신청을 했지만 지노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편, 어용노조 설립 이후 현장에서 민주노조가 세를 겨룰 정도로 조직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유성기업지회가 거의 유일하다. 유성기업지회는 8월 말 현장복귀 시점부터 조직적 현장 저항과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을 동시에 진행했다. 8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복귀 절차에서 첫 복귀부터 절반 이상의 조합원이 사측의 일방적 전환배치 및 교육에 항의해 작업을 거부하고 조합사무실로 집결했고, 이후에도 9월 내내 사측의 전환배치와 교육에 맞서 현장 투쟁을 계속 진행했다. 그 결과 마지막까지 복귀하지 않았던 조합원 250여명 대부분이 어용노조에 가입하지 않을 수 있었고, 또한 개별 복귀한 조합원 일부도 지회 조합원으로 유지시킬 수 있었다. 또한 10월에는 해고자 23명에 대한 근로자지위보존, 임금가지급, 해고자 노동조합 출입보장 가처분 소송을 통해 해고자 지위를 보존받았으며, 11월에도 2차 해고자 4명에 대해 같은 소송을 통해 지위를 보존 받았다. 지노위에 부당징계 구제신청을 통해 1차 징계자 101명의 부당징계 판정을 이끌어냈으며,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해 노동부가 70여건의 근기법 위반 사항을 적발하도록 만들었다. 이 밖에도 용역깡패의 폭력 사주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으로 회장을 고소했으며, 부당노동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통해 회사의 노골적 어용노조 지원과 금속노조 탈퇴 공작에 압박 했다.

 

 

2) 극복과제

○ 올해 임단협 준비 과정부터 어용노조 설립을 고려한 계획 수립

발레오만도부터 최근 보쉬전장까지 어용노조가 건설되고 민주노조가 현장 장악력을 상실한 대부분의 사업장은 사측의 민주노조 탄압과 어용노조 설립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 관성적 교섭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미 경험했듯이 이제 어떤 사업장에 사측이 어용노조를 준비하고 있어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다. 지금까지 승승장부해온 자본 사이에서 어용노조 설립은 민주노조를 위협할 수 있는 쉬운 선택사항 중 하나가 되었다.

올해 4월 임단협 요구안 발송과 이후 교섭 과정부터 사측의 사전조짐을 철저히 살피고, 동시에 교섭 전략, 쟁의 전략의 한 부분으로 어용노조 설립을 전제해야 한다. 사측의 어떤 도발에도 준비가 되어 있다는 태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앞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자본은 노조의 대응력을 시험하며 어용노조 설립을 준비해 나간다.

 

○ 초정파적 활동가 결집

사업장 내 정파적 갈등이 있는 곳은 사측이 더욱 쉽게 조합원 간 갈등을 조장할 수 있었다. 여러 갈등이 있었던 전직 간부들이 사측에 먼저 투항하면서 투쟁력이 급감한 사례들이 많다. 민주노조 운동의 약화와 관성적 조합활동으로 대의원 수준부터 민주노조에 대한 의식성이 많이 약화된 상황, 지금까지 직장폐쇄, 어용노조 설립이 성공적으로 먹혔던 상황에서 사측의 압력은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올해 임단협 투쟁은 다시 ‘민주노조 사수’라는 대의를 바탕으로 초정파적 논의와 합력을 의식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민주노조 내부부터 흔들려서는 사측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 공세적 조합원 교육과 사측 선전에 대한 준비된 대응

민주노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조합원들의 불안감을 가능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측은 공장이 가동되는 내내 관리자들과 사보 등을 통해 이런 저런 구조조정설, 정리해고설을 유포한다. 이런 선동에 노조가 대응하기 위해서는 내용으로나, 선전의 양으로나 사측을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기업의 객관적 상황을 노조의 관점에서 재구성해 불안이 아니라 자신감을 고취할 수 있어야 한다. 발레오전장의 경우 공장 철수론에 조합원들이 심하게 휘둘렸는데, 사실 발레오공조와 달리 발레오전장은 높은 시장 점유율, 국내 대체 공장 부재, 연3~4천억원 상당의 매출 등을 고려할 때 전혀 철수를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KEC는 지주회사로의 이익 이전과 계열사와의 부당거래를 고려할 때 영업적자가 의도된 것이었고, 유성기업 역시 무노조 계열사에 이익을 몰아주며 영업적자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일시적 재무위기였을 뿐이었고, 보쉬전장은 수익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보쉬의 한국 사업 부분간 이익 조정이 문제였다. 사측의 경영위기설, 구조조정설은 회사 상태를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협박’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4월 초 발간 예정인 노동자운동연구소 보고서, ?어용노조 설립 이후 경영, 노사관계 변화 2007~2011(가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민주노조의 의미와 어용노조의 효과에 대해 분명하게 교육을 해나가야 한다. 87년 대투쟁 이후 십 수년을 거치며 조합원 대부분에게 ‘민주노조’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다시 왜 민주노조를 만들었고, 87년 이전에 공장이 어떠한 상태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또한 현재 어용노조가 설립된 사업장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어용노조를 마치 남의 이야기인 냥 생각하는 관성을 넘어서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의 강도에도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년 8~12시간 교육 중 실제 교육이 이뤄지는 시간은 대부분 사업장에서 1시간도 되지 않는다. 형식적인 정세 교육, 임단협 요구안 설명 정도로 교육을 처리하는데, 이래서는 사측의 선동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 어용노조를 예상한다면 조합원 의식 교육은 이후 투쟁을 해나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다.

 

○ 사무직에 대한 영향력 확대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공장 자동화나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져 생산직에 비해 사무직 비율이 꽤 크게 늘어나 있다. 앞의 예에서 거론된 사업장 모두는 직장폐쇄 시기 이들이 생산에 투입돼 공장을 가동했다. 이들에 대한 노조 통제력이 작으면 작을수록 사측이 보다 수월하게 직장폐쇄를 할 수 있다.

물론 사무직을 조직하는데 구사대로 활동해 온 역사나, 근무조건의 차이 등을 무시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이렇게 방치해 두어서는 노조 파업의 힘이 계속 약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러 판단을 거쳐 조합 가입 범위를 확대하고, 조직화 사업에 나서야 한다.

 

○ 퇴직이 얼마 안남은 조합원들의 결속력 강화

사측이 어용노조 가입을 협박할 때 가장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조합원들은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조합원들이다. 퇴직을 앞두고 탄압이 예상되는 금속 노조에 남아있는 일이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근속연수가 긴 조합원들이 사측의 협박에 먼저 어용노조로 넘어간 사례가 많았으며, 높은 숙련을 가진 이들로 인해 사무직만으로 돌아가기 힘든 공정도 가동이 되는 일이 많았다. 지회는 평상시 근속연수가 긴 조합원들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결속력을 높여야 한다.

 

○ 생산 물량에 대한 통제력

최근 현대차를 비롯한 원청들은 아예 20% 이상의 재고를 이른바 안전재고라는 이름으로 미리 확보해 놓을 것을 부품사에 요구하고 있다. 유성기업 점거농성 기간 현대기아차 라인이 정지된 것을 반면교사로 삼은 현대기아차의 정책이다. 재고 비용이 늘어나기는 하지만 재고를 확보하고 있는 사측은 파업과 직장폐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이 재고는 직장폐쇄 기간 사무직 현장투입에 따른 가동률 저하, 숙련 저하로 인한 불량률을 잠시 동안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이다.

금속노조 지회들은 올해 임단협을 앞두고 이 재고 물량을 특별하게 예의주시 할 필요가 있다. 직장폐쇄 이전 사측은 주문 부풀리기로 재고를 평상시보다 많이 확보한다. 잔업특근, 시간당 생산량 등에 대해 노조가 더욱 관심으로 가지고 미리 대응방안을 확보해 놓아야 한다.

 

○ 지역연대 확대 강화

사측의 노조탄압은 사업장 내 노사 간의 충돌로만 끝나지 않는다. 발레오만도, KEC, 유성기업 등에서 드러났듯이 지역의 검찰, 경찰, 노동부가 함께 움직이고, 심지어 원청이 직접 관여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러한 자본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노조 역시 지역 차원에서 연대의 힘을 최대한 끌어올려야만 한다.

임단협 초기부터 어용노조 설립 또는 직장폐쇄 등을 염두해 두고 금속 지역지부 차원,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공동대책을 수립해야 하며, 조합원 간 교류와 공동행사 역시 의식적으로 활성화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 사업장은 지회 힘만으로 돌파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공권력과 노동부가 노골적으로 사측을 지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역차원에서 투쟁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 전국적 제도 개선 투쟁과 원하청 공동 투쟁

노조법 재개정, 공격적 직장폐쇄에 대한 규제, 원청의 하청 노사관계 개입 규제, 손배소 제도 개선 등 민주노총 차원의 제도 개선 투쟁이 올해 활발하게 이루어질 계획이다. 사실 제도 자체가 자본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단위 사업장만의 대응으로 사측의 민주노조 탄압을 막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에 전 사업장이 적극적으로 함께 해야 한다.

 

 

 

4. 나가며

회사노조(어용노조) 설립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다. 법 개정을 통해 기업단위 교섭, 강제적 교섭창구 단일화 등의 독소조항들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사측은 기회만 된다면 민주노조보다는 회사에 협조적인 노조를 만들려 할 것이다. 이건 이윤추구가 목적인, 그리하여 인건비 절감을 숙명처럼 여기는 자본에게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민주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설마 우리 사업장에…”라는 방심은 금물이다. 사측은 임단협 시기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준비해 뒀던 아웃소싱을 관철하기 위해, 또는 인근지역 다른 사업체의 회사노조가 안착하는 것에 고무받아서도 회사노조를 설립할 수 있다. 매년 진행되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나 부분파업에 직장폐쇄라는 초강수를 두며 회사노조를 설립할 수도 있고, 공장 매각이나 정리해고 등의 소문을 퍼트려 조합원의 불안감을 극도로 올려놓아 회사노조를 순식간에 과반 노조로 만들 수도 있다.

 

사측의 회사노조 설립은 우발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계획 속에서 진행된다. 공격적 노무관리를 위한 임원 교체, 조합원을 흔들기 위한 사전 선전작업, 노조와 조합원들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기존 관행 무시와 도발적 행동 등 지금까지 회사노조가 설립된 대부분의 사업장들은 이런 비슷한 패턴을 보여 왔다. 혹시 사업장에 이와 비슷한 흐름이 있다면 올해 회사노조 설립에 대한 대응책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한 달 후부터는 금속노조 사업장들의 2012년 임단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금까지 위 사업장들은 노사협의나, 임단협 기간에 기회를 봐서 교섭을 파행으로 몰고 가며 노조 탄압을 시작했다. 민주노조 사업장들은 올해 아예 어용노조 설립을 기정사실화하고 싸울 필요가 있다. 조합원들에게 예방주사를 놓아야 한다.

 

사측의 어떤 도발에도 민주노조가 준비돼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아 하며, 조합원들과 함께 민주노조 사수를 결의해야 한다. 지금부터 관성적인 교육이 아니라 사측의 현장 흔들기에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 교육을 진행해야 하며, 민주노조가 87년 이후 어떻게 현장을 바꿨는지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예전처럼 노조가 모든 것을 대리하는 교섭이 아니라 조합원 모두가 참여하고 책임지는 교섭을 진행해야 하며, 산별노조다운 연대와 집단성을 확실하게 보여 줘야 한다.

우리가 “설마”하는 사이에 사측은 지금도 회사노조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2년간의 패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민주노조 진영도 지금부터 준비해야만 한다.